다음 과학 실습 시간, 새온은 낮은 관찰대로 갔다. 지난번 복도에서 본 통 둘이 나란히 있었다. 소담과 두레도 같은 층을 따라왔다.
새온은 두레가 안은 기록책을 봤다. 수학 자리에서 둥근 자국 둘을 남긴 책이었다. 오늘 펼칠 면에는 무엇이 이어질까.
곽도은 선생님이 관찰대 옆에 섰다. 뒤로 돌아갈 넓은 복도는 열려 있었다. 새온은 통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1층 · 실험 구역
오늘의 관찰: 같은 통의 전과 후
통은 모두 투명 플라스틱이었다. 모래색 뚜껑이 잠겨 있고 낮은 받침에 섰다. 왼쪽 통에는 얼음이, 오른쪽 통에는 물이 보였다.
얼음은 울퉁불퉁한 모서리를 세웠다. 오른쪽 물은 통 바닥에 낮게 퍼져 있었다. 새온은 두 통 사이를 손끝으로 짚었다.
“이번엔 둘을 비교하네.”
선생님이 왼쪽 통을 가리켰다.
“이건 따로 준비한 관찰용이야.”
손이 오른쪽 받침으로 옮겨 갔다.
“오늘 기록은 이 통의 전과 후야. 두 통을 잇지는 마.”
새온은 왼쪽으로 뻗었던 손을 거뒀다. 비슷한 통이라고 이어 놓을 수는 없었다. 오른쪽 통 곁에 전 기록 그림이 놓여 있었다.
그림에도 같은 모래색 뚜껑이 있었다. 그 안에는 물로 만든 얼음이 담겼다. 지금 통 안에는 얼음 덩어리가 남지 않았다.
“전 그림의 얼음은 모두 녹았어. 통은 열지 않았어.”
선생님은 받침에서 손을 내렸다.
“넣거나 꺼낸 것도 없어. 기록을 이어 봐.”
관찰판도 두 장이었다. 왼쪽은 오른쪽 통의 전 기록을 받쳤다. 오른쪽에는 전후 그림과 설명을 나란히 놓을 자리가 있었다.
오른쪽 관찰판에는 그림 자리 둘이 있었다. 위에는 ‘전’, ‘후’라는 작은 글이 적혔다. 그림 아래 설명을 붙일 자리도 비었다.
선반에는 현재 통의 그림이 한 장 더 놓였다. 얼음 없이 물만 담긴 그림이었다. 새온은 그것을 먼저 집었다.
맑은 물이 넓게 그려져 잘 보였다. 새온은 전 자리에 그 그림을 놓았다. 얼음 그림은 남은 후 자리로 밀었다.
“물부터 놓자. 잘 보이네.”
두레가 꿀색 기록책을 펼치다 손을 멈췄다. 소담은 두 그림 위의 작은 글을 봤다. 새온은 손을 거두고 판 전체를 보았다.
앞에는 물, 뒤에는 얼음이 놓였다. 오늘 본 통에는 물만 남아 있었다. 그림을 보기 좋게 놓았는데 기록과는 거꾸로였다.
“잠깐. 앞은 녹기 전이야.”
소담이 전 기록 그림 곁의 빈 선반을 짚었다. 새온은 자신이 옮긴 얼음 그림을 다시 들었다. 전 자리에 얼음을, 후 자리에 물을 놓았다.
“앞뒤를 바꿨네. 이제 이어져.”
그림 아래에 임시 설명 창이 켜졌다.
전: 얼음
후: 다른 물질
새온은 뒤 그림에 담긴 물을 봤다. 지난번처럼 빈 통으로 보지는 않았다. 물이 남았다는 건 이제 놓치지 않았다.
얼음은 모서리가 있었고 물은 납작했다. 그림의 이름도 달랐다. 얼음에서 물이 됐으니 다른 물질이라는 말도 맞을 듯했다.
“모양이 바뀌었어. 다른 게 됐지?”
두레도 그림 아래의 이름을 번갈아 봤다. 기록책 가운데 짧은 선을 그었다. 전후를 서로 다른 물질로 나눈 선이었다.
“이름이 달라. 따로 적을게.”
새온은 후 설명 쪽에 손을 올렸다. 가지런한 글 아래에 매끈한 호박빛 윤이 둘렀다. 이미 다 맞춘 기록처럼 보였다.
왼쪽 관찰판 가장자리에는 둥근 빛 매듭이 있었다. 탁한 호박색 가닥 사이로 크림빛 눈 틈이 보였다. 가닥은 오른쪽 관찰판의 설명 테두리까지 이어졌다.
관찰판 둘에 감긴 하나의 엉킴이었다. 오른쪽에서는 가닥이 납작하게 굳어 있었다. 새온은 매끈한 윤을 보고도 손을 내리지 못했다.
틀린 생각이 뭉친 장치였다. 통에는 감기지 않았고 물과 닿지도 않았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에도 판 밖으로 번지지 않았다.
퀘스트
딴물질 엉킴
같은 통의 얼음이 모두 녹은 뒤
남은 것과 그 상태를 기록하기
보상: 스킬 강화
새온은 설명 자리를 누르려다 멈췄다. 앞뒤 그림은 맞게 놓았다. 그런데 이름이 다르면 물질도 달라진 것일까.
얼음은 무엇으로 만든 것이었지.
두레가 가슴 앞에 빈손을 들었다.
“아직. 내 말도 들어.”
새온은 손을 내려 판 바깥에 뒀다. 아까 그림을 옮길 때보다 천천히 물러났다. 두레의 손끝이 전 그림으로 갔다.
“여기부터 볼게.”
두레는 얼음의 모서리를 짚었다. 이어 오른쪽 통 바닥의 물 앞에 손을 뒀다. 새온은 그 손이 지나온 두 자리를 봤다.
“물로 만든 얼음이야.”
두레는 임시 설명을 한 번 봤다. 입술을 닫았다가 그림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남은 물까지 봐야 해.”
새온은 전 그림과 현재 통을 나란히 봤다. 단단한 모양은 없어진 채였다. 그래도 안에 남은 물은 그림에서 이어 볼 수 있었다.
소담이 안경 다리를 정리했다. 오른쪽 통의 잠긴 뚜껑을 밖에서 짚었다.
“조건은 둘이야.”
손끝이 전 그림과 현재 통 사이로 왔다.
“같은 통의 기록. 넣고 꺼낸 건 없음.”
새온은 따로 준비한 왼쪽 통을 봤다. 그 안의 얼음은 아직 그대로였다. 오늘 녹은 얼음의 앞 모습은 그 통이 아니라 전 기록에 있었다.
“이 둘만 잇는 거네.”
새온은 전 그림과 후 그림의 아래를 짚었다. 엉킨 매듭이 작게 움찔했다. 소담의 손끝에서 가는 크림빛 핀이 판 테두리에 닿았다.
매끈한 호박빛 윤에 틈이 났다. 아래의 ‘다른 물질’이라는 말은 아직 남았다. 새온은 그 글에서 두레의 손으로 눈을 옮겼다.
두레는 기록책의 빈 면을 펴 놓았다. 왼쪽에는 모서리 있는 덩어리를 그렸다. 오른쪽에는 통 바닥에 퍼진 물을 그렸다.
두 그림 바깥에는 같은 통의 윤곽을 그렸다. 새온은 그 선이 뚜껑까지 이어지는 것을 봤다. 얼음과 물 사이를 빈자리로 끊지 않았다.
“전에는 고체.”
두레의 손끝이 왼쪽 그림에 멈췄다. 이어 오른쪽 그림으로 옮겨 갔다.
“지금은 액체야.”
새온은 두 그림 아래의 설명 자리를 봤다. 무엇인지와 어떤 상태인지 적을 곳이 따로 있었다. 아까는 모양이 달라진 것만 보고 둘을 함께 바꿨다.
두레는 전 그림 아래에 물이라는 말을 적었다. 후 그림 아래에도 같은 말을 적었다. 손끝이 두 말 사이를 천천히 이었다.
두레는 가운데 그은 선을 지웠다. 그림 아래의 물이라는 말을 다시 짚었다.
“내가 이름만 나눴네.”
두레의 손이 전 그림에서 후 그림으로 갔다.
“녹아도 같은 물이야.”
두레가 새온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바뀐 건 상태야.”
새온은 오른쪽 통을 다시 봤다. 새 물질이 들어온 통이 아니었다. 전 기록의 얼음이 녹아 액체 물로 남은 통이었다.
“난 모양만 보고 바꿨어.”
새온은 후 설명의 임시 글을 지웠다. 물이라는 말을 적고 그 아래 액체라고 적었다. 이번에는 빈 칸 둘을 따로 채웠다.
“같은 물. 지금은 액체.”
두레가 두 그림을 다시 짚었다. 전 자리에 얼음, 후 자리에 물이 놓였다. 같은 통의 시간 순서가 맞았다.
손끝은 물과 액체라는 말에 차례로 머물렀다.
“남은 것과 상태. 둘 다 맞아.”
두레는 기록책의 페이지 끝을 한 번 쓸었다.
“여기서 끝.”
관찰판 테두리의 매듭이 느슨해졌다. 매끈하게 붙은 윤도 길게 풀렸다. 가닥은 크림빛으로 바뀌어 판 위에 곧게 놓였다.
새온은 판에서 통으로 눈을 옮겼다. 오른쪽 통에는 여전히 액체 물이 있었다. 따로 둔 왼쪽 통의 얼음도 빛으로 바뀌지 않았다.
앞 가장자리의 작은 결과 등이 켜졌다. 새온은 고친 설명을 선생님에게 보여 주었다.
“얼음도 물이었어요. 모양만 보고 다른 거라고 했어요.”
두레가 기록책을 손바닥으로 받쳤다.
“얼음이 녹아 액체 물이 됐어요. 물질은 같아요.”
선생님은 두레의 말이 끝난 뒤 고개를 끄덕였다.
“깔끔해.”
얼음이 녹아 고체에서 액체로 바뀌었다. 이런 변화를 녹음이라고 한다. 새온은 같은 물이라는 두레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퀘스트 클리어
딴물질 엉킴 · 풀림
기록: 같은 물 · 고체에서 액체로
스킬 강화: 「같은 물」 녹음(고체→액체)
받침 앞의 작은 홈이 열렸다. 새온은 통에서 손을 떼고 몸만 숙였다. 안에는 실제 삼단 돌계단 조각이 있었다.
맨 윗단 위의 홈은 비어 있었다. 글자도 문양도 없었다.
푸른빛이 단 모서리를 따라 올라갔다. 지난 과학 자리에서는 위 홈 바로 아래였다. 이번에는 그 가장자리까지 와서 고였다.
새온은 물에 비친 빛을 보려다 홈으로 눈을 돌렸다. 빛이 고인 것은 돌의 빈자리였다. 통 안의 물은 받침 위에 따로 남아 있었다.
“가장자리까지 왔네.”
셋은 조각을 꺼내지 않았다. 새온의 손도 홈 바깥에 머물렀다. 잠시 뒤 홈은 닫혔다.
두레가 기록책을 새온에게 조금 기울였다. 전에는 모서리 있는 얼음, 후에는 낮게 퍼진 물이었다. 두 그림 아래에 물이라는 말이 나란히 남았다.
새온은 그 사이를 손끝으로 따라가다 멈췄다. 책에 손을 대지 않고 눈으로 끝까지 봤다. 두레는 마지막 그림까지 보여 준 뒤 책을 닫았다.
“앞뒤 기록, 챙겼어.”
소담이 열린 복도 쪽으로 몸을 돌렸다. 새온도 관찰대에서 물러났다. 오늘은 남은 물의 이름까지 제대로 적었다.
셋은 같은 맨 아래층을 걸었다. 새온은 기록책을 안은 두레 옆에 섰다. 빈 홈 가장자리에 머문 빛이 자꾸 떠올랐다.
꼭대기엔 뭐가 있지?